카바레트란? 03 헤겔에 나타난 소외(Entfremdung) 및 이로니(Ironie)

헤겔에 나타난 소외(Entfremdung) 및 이로니(Ironie)
 
앞에서 브레히트가 주창한 소외성 효과는 다른 표현으로 이로니(Ironie)를 매개로 한 공연 예술이라고 말해질 수 있으며, 여기에서 나타난 이로니(Ironie)는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단순한 혼돈을 의미하지 않는다. 헤겔의 미학강의에서 현재화된 이로니(Ironie)를 관객들은 공연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카바레트 공연에서 이로니(Ironie)는 단순히 관객에게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 스스로가 이로니(Ironie)라는 매개를 통하여 정신의 자유로운 활동의 장()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마련된 장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즉자를 자연스럽게 대상화 시켜나간다.
 
생동하는 실체야말로 참으로 주체적인, 다시 말하면 참으로 현실적인 존재이다. 그것은 실체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며 나아가서는 스스로 자기를 타자화하는 가운데 자기와의 매개를 행하기 때문이다. 실체가 곧 주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실체에 순수하고도 단순한 부정성이 작용하면서 바로 이로 인하여 단일한 것이 분열됨을 뜻한다.
 
생동하는 보편자인 실체는 즉자적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순수하면서도 긍정적인 부정성을 향해 나아간다. 관객은 자신의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부정성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순 즉 이로니(Ironie)를 인정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 긍정적 부정성은 단순한 자기 부정이 아니며 바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인 자기자신으로부터 지양성을 지닌 즉자가 된다. 이 즉자는 외향적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부정적 부정을 부정하는 가운데 순수한 부정을 통해서 긍정적 부정을 지닌 실체가 되어간다.
자신을 소외시키지 못하는 관계에서는 더 이상의 지향을 내포한 부정성이 자리잡지 못하고 단순 부정에 머물게 되며, 이러한 부정성이 가지는 정체(停滯)를 극복하기 위하여 개념은 새로운 출발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출발은 기존 개념에 대한 진보를 기초로 하며 개념의 진보는 더욱 더 자신을 소외시킴으로써 자신의 참 존재에 다가간다. 자신의 소외가 자신의 발전의 기초가 되는 개념의 활동은 생동력이라는 입장에서 운동하는 개념으로 정립될 수 있다.
 
개념은 보편자로서 한편으로 자신을 통해서 피규정성이자 특수함으로 자신을 부정(否定)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편자를 부정하는 특수성을 다시 지양(止揚, aufheben)한다. 왜냐하면 보편자는 보편자 자신의 특수한 측면들에 지나지 않는 그 특수한 것 안에서 절대적인 타자(他者)로 오지 않고, 특수한 것 안에서 보편자인 자신과 다시 통일성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념은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가운데 무한한 부정(否定, Negation)으로 머무는데, 이는 타자에 대립되는 부정이 아니라 단지 자신과 관계하는 긍정적인 통일 속에 머무르는 자기규정(Selbstbestimmung)이다.
 
부정은 부정을 극복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부분으로 지양된다. 부정은 단순한 언어적 부정(Negativität)이 아닌 움직이는 긍정(Positiv)으로서의 부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즉 타자에 대립되는 부정이 아니라 보편자로서의 부정으로 개념화되는 방향성을 지니게 된다. 이렇게 이루어진 개념의 부정은 철저히 자신을 바라보는, 즉 자신을 미화시키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자기규정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자기규정 역시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자기규정은 카바레트에 나타난 관객과 예술가의 통일성을 이룩하는 기초로 대변된다. “물론 이로니(Ironie) 속에서도 그처럼 절대적인 부정성이 들어 있어서, 주체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피규정성들과 일면성을 제거하면서 스스로와 관계한다.”는 헤겔의 언급 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로니는 자신을 부정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이로니를 통해서 즉자는 대자를 만나기 위한 개념의 투쟁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로니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찾는 진정한 즉자를 만나기를 희망하게 된다. 개념의 헛된 진지함은 어느새 자신의 극복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을 한다. 이러한 개념의 헛된 또는 가식된 진지함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과정에서 이로니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조건이 된다. 그래서 이로니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즉자가 이로니의 형태로 작용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로니는 다른 모습의 부정성이라고 표현된다.
 
이로니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부정성(否定性, Negativität der Ironie)이 드러나는 가장 가까운 형태를 보면, 한편 사실적이고 인륜적이며 함축적인 모든 것이 공허해지고 모든 객관적인 것이나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겨지던 것이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만약 자아가 이 입장에 서게 되면 그에게는 자기의 주관성을 제외한 모든 것은 무가치하고 공허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주관성은 스스로 텅 비고 공허하게 되어버린다. 다른 한편으로, 자아는 스스로 자족(自足)해야 하는데도 역시 만족하지 못하며 스스로 불충분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로니의 역할에서 부정성이 드러나면서 발생하는 문제는 자기반성을 지닌 운동성으로 이어진다. 자기반성은 순수한 부정성의 다른 모습으로 순수한 부정이란 자신의 실존을 진정으로 극복하려는 개념적 운동이 포함되어 있으며, 순수한 부정은 이로니라는 형식을 통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적대시되던 단순한 부정이라는 의미를 바꾸어 놓게 된다. 그러나 순수한 자기부정이 어떤 압력에 의해서 강제로 규정지어진 개념으로서만 개념화 되어버린다면 순수한 부정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순수한 부정은 개념의 충돌을 통한 자기부정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자기부정은 자기규정의 다른 모습이다. 자기부정이 전통과 관습에 얽매여있는 자기규정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으로서의 자기부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부정은 이로니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지양되는 과정을 겪는다. 또한 이로니는 자기 부정을 통해 자신의 특수한 개성을 극대화시키면서 환경에 의해서 또는 경험에 의해서 고착화된 자아를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에 순진할 정도로 순종적이다. 여기에서의 순종적인 모습이란 외관상으로는 평온해보이지만 자기학대 즉 피해의식에 근거하며, 이러한 피해의식으로 인해 자신을 지키려하는 잘못된 보호본능이 자신을 얽어매는 올무가 되어버린다. 이 억압에서 정신은 자연스럽게 자유를 추구하며, 이 정신은 잘못된 경험 그리고 잘못된 것이라 여겨왔던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 속에 이로니를 자신의 대변인으로 드러내게 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서 자유로운 정신은 어느새 습관적으로 정형화된 개념을 극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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