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트의 소외성과 헤겔의 소외
카바레트의 소외성은 자신에 대한 부정성을 근거로 한다. 이러한 부정성 즉 이로니가 없다면 카바레트에 있어서 모든 부정성 즉 이로니(Ironie)는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만 설명되어진다.
예술작품에 공통된 점은 그것이 의식 속에서 산출되고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인데, 이제 이러한 사실이 작품에 대립되는 확연한 개념으로 제시된다.
예술작품은 정신이 현실화된 즉 외화된 모습이다. 그리고 정신의 현실화된 모습이란, 예술가의 정신 속에서 생동하는 부정성이 밖으로 표출되어 이로니의 형태로 나타난 정신 현상의 외화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외화가 소외성을 원천으로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 소외성이 카바레트적으로 표출되는 가운데 헤겔의 부정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카바레트의 소외성은 카바레트의 실험정신 즉 거리두기를 통해서 카바레트 자체 내에서 생성된 것이지만, 헤겔의 부정성을 기반으로 하는 소외에 기반하고 있음을 앞의 설명에서 확인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헤겔의 부정성이 기초하지 않은 카바레트의 소외성은 근원을 또는 본원을 잃어버린 내용이 된다.
예술과 관객에 대한 자기부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정신예술로서의 카바레트는 단순한 부정이라는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부정 그 자체가 발전을 위한 부정의 부정(negativitätische Negation)에서 부정을 통한 긍정(positive Negation)으로 나타난다. 부정의 부정을 극복하는 과정인 이로니(Ironie)는 관객에게 소외성 효과로 인한 외화 즉 극에 전적으로 몰입하도록 만든다. 어느 순간 관객은 자신의 사유에서 카바레트의 소외성 효과를 통해서 자신이 배우가 되는 상황을 저절로 마주 하게 되며 자신의 카바레트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즉 관객들은 부정성의 이로니(Ironie)를 통해서 언어적 희론(戱論)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 자신을 부정시키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서 관객들은 자신이 자신의 부정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한다는 사실이 불편해지는 경우를 자주 접하지만 이 현상은 매우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관객은 자신이 스스로 부정성을 띠는 것이 남에게 드러나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배우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내세워 회피성의 만족을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배우로서 카바레티스트는 관객의 숨어있는 본성인 이로니 즉 부정성을 기반으로 한 표현방식으로써의 이로니를 끄집어 내어서 관객에게 대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신이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드러내는 허세는 인간의 본능이 가진 도피적 성향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부정이다. 그러나 이 허세는 어느새 머무는 것 즉 정체된 것이 아니라 이로니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즉자를 바라보는 자신의 대자를 만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헤겔이 이야기하는 긍정적 측면의 부정성인 것이다.
변증법적인 것이 아무런 사려 없이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부정의 운동으로 나타날 경우, 우선 이 운동은 의식으로서의 자기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기가 거기에 통째로 내맡겨져 있는 운동으로 나타난다. …중략… 자각적 부정에 의해서 의식은 그 자신이 자유롭다는 데 대한 확신을 안고 실제로 이 자유에 대한 확신을 경험하는 가운데 마침내 확신을 진리로 고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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