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트(Kabarett)의 역사와 소외성
카바레트(Kabarett)는 아직까지 한국에서 생소한 예술 장르이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 주둔한 미군들에 의해 소개된 댄스 클럽(Dance Club) 개념의 카바레(Cabaret)가 1970년대와 80년대에 불륜의 온상으로 전개되면서 형성된 왜곡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에 알려진 카바레와 정통 프랑스 카바레(Cabaret) 그리고 독일식 카바레인 카바레트(Kabarett)는 다르다. 독일식 카바레트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언급은 카바레의 역사를 정리한 리사 아피냐네시의 『카바레 새로운 예술공간의 탄생』에 잘 나타나 있다
카바레(Cabaret)라는 말은 ‘포도주 창고’ 또는 ‘선술집’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되었으며 그런 카바레는 프랑수아 비용이 살았던 15세기 중반에 이미 공연장으로 활용되었다라고 알려져 있다. 더 근원적으로 카바레의 원류를 찾아들어가 보면 중세시대의 카톨릭 전례에 따른 카니발이 카바레적 요소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니발은 정해진 일정 축제동안 일반 평민들이나 농부들이 자신들의 해학을 즐기던 장이었다. 이 가운데 몇 세기 뒤에 근대적 도시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예술 카바레의 두 가지 형식, 즉 하나는 예술가들끼리 작품을 선보이고 즉흥 공연을 하는 회합 장소로서 카바레,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규모는 작지만 높은 지적 수준을 자랑하는 레뷔(Revue)의 공연장으로서의 카바레이다.
이러한 장소적 변화는 카니발 축제 속에 담겨진 해학의 장소로서의 장터라는 열린 공간에서 20세기의 고정되고 축소화된 장소로 변화되었다. 이후 축제에서만 나타나던 카니발이 정식 공연형식으로 자리를 잡은 카바레는 19세기 말에 프랑스에서 싹터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초까지 독일에서 정치와 문화의 독특한 풍자 매체로 꽃피운 아방가르드나 예술 카바레트로의 변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각 카바레트의 장소적 차이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카바레트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볼거리라는 관점에서 무대공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담배 연기와 이야기’라는 몽롱한 자율성을 제공했다. 나아가 카바레(선술집)라는 장소의 특성상 음식을 먹거나 마실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카바레트는 모더니즘이 대두되었던 20세기 초의 시대상황에 맞추어 젊은 정신 즉 도전의식을 바탕으로 했으며 생기발랄한 가운데 ‘심야의 도플갱어, 웃음 만발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도시의 배꼽’이라는 정신을 기반으로 한 반골정신으로 창의적 공연을 만들어 갔다. 이후 20세기 초에 카바레트는 새로운 예술을 위한 도전의 장으로 자리를 잡고 생명력을 이어갔다.
20세기 초의 카바레트는 아방가르드를 주도하면서 자신들의 예술을 찾아가던 젊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대를 통해서 표현하던 실험 무대이자,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사건을 다루면서 도덕, 정치 그리고 문화를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풍자와 해학의 무대로 각광을 받았다. 최고의 카바레트는 이 두 가지 특징 즉 실험정신과 사회적 책임을 가지는 정신을 고르게 표현한 것들이다.
카바레트는 연극(정극)과 유흥으로서의 쇼(Show)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어 가면서 그전까지 일반적으로 인식되던 예술과 다른 모습으로 카바레트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어 나아갔다. 이러한 가운데 무대와 장치, 공연 내용에 즉흥성을 가미한 공연예술인 카바레트는 재치가 반짝이는 저항 정신과 반골 기질, 혁신적인 태도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시대 상황에 따라 초점을 조정했다. 리사 아피냐네시는 이러한 ‘반골 기질’이 곧 카바레의 본질이라고 보고 있다.
카바레트 (코메디가 아니다 그리고 독일어로 발음해야한다 .카바레가 아니다, 정치 카바레티스트들이 매우 기분 나쁘게 생각한다) 는 풍자가 있어야 한다, 말했듯이: 정치 모티브를 비평하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리사가 언급한 실험정신, 풍자, 저항, 반골기질, 혁신적 태도는 독일식 카바레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철학적 기초로 헤겔의 부정성을 기반으로 한 ‘소외’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카바레트는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한 철학적 이로니(Ironie), 즉 역설을 중심에 두고 카바레트 특유의 근본정신이자 표현방식인 ‘소외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독일식 카바레트는 1901년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온 에른스트 폰 볼초겐(Ernst von Wolzogen)이 베를린의 알렉산더 거리 4번지(Alexanderstraße 4)에 자리를 잡으면서 생겨났다.
독일의 첫 번째 카바레트 극장의 이름은 위버브레틀(Überbrettl) 즉 <빨래판>으로 명명 되었는데 그 이름 속에는 세상의 부조리를 공연으로 씻어내는 ‘빨래판’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더불어 그 시기의 독일은 베를린뿐만 아니라 뮌헨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도 독일식 카바레트의 시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했던 카바레트는 기존의 예술적 틀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도전의식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도전의식은 그들이 자각을 했든 하지 않았든 뒤에 비교 검토하게 되는 헤겔 변증법 상의 부정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
독일 카바레트에서 나타난 부정성 즉 소외성은 20세기 초 마리네티(Marinetti)가 주도한 이탈리아의 미래파(Futurismus)나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트 극장 ‘카바레 볼테르(Cabaret Voltaire)’의 아방가르드(Avant-Garde)로 진화되었다. 이런 발전들 가운데 그 중심에는 항상 행동(Akt), 즉 관객(Zuschauer)과의 소외성(Verfremdung)을 표현방식으로 하는 극예술인 카바레트를 발전시켜 갔는데. 행동 즉 소외성(Verfremdung)이 지향하는 ‘부정’을 통하여 카바레티스트는 관객을 단순히 공연에 와서 앉아있는 머무는 자(bleibender Seyn)에서 움직이는 자(bewegender Seyn)로 차츰 변화시켜 나갔다. 이 움직임은 정신의 적극적 개입을 실현하는 육체적 반향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의 적극적 개입은 관객을 더 이상 제3자로서의(als Fremd) 방관자가 아닌 직접 실천을 하는 자(Seyn)로서의 정신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공연자(Darsteller)만 운동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도 이에 맞추어 스스로 변화하도록 이끌어냈다. 이렇게 나아감으로 나타난 정신은 어느새 진보된 새로운 부정성을 통해서 관객 스스로를 한층 더 깊이 인식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러한 정신의 운동이야말로 철학이 가진 가치관 치유(Wiederherstellung der Auffassung)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 과정에서 정신의 운동성이 부정성에 근거한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상황을 관객들은 카바레트의 소외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대면했다.
그리고 이때 관객이 획득한 운동성은 즉자를 대자화 시키는 소외성(Verfremdung)을 통해서 이룩된 즉 소외성이라는 부정성을 통해 이룩한 정신의 새로운 생동하는 운동이 되었다. 또한 카바레트의 소외성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은 일상 가운데 자신의 나약함 속에 머무르며 안주하던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정신적 투쟁(Der Kampf ums Geist)의 장을 자연스럽게 찾게 됐다. 부정성의 다른 단어인 소외성을 통해서 나타난 정신은 자신의 나약함마저도 밀쳐버리고 자신의 자리를 새롭게 세우는 생동하는 정신(lebhaftiges Geist)으로 거듭난다. 또한 소외성을 통해서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을 향한 지향성(Richtstrahlern)이 자연스럽게 담보되기에 인간 정신의 부정성 즉 관객이 스스로 찾아 나서는 방법인 소외성으로 귀결 된다.
물론 예술작품들은 사상이나 개념이 아니라, 개념이 스스로에게서 발전해감각적인 존재로 소외(疏外, Entfremdung)되어 나아가는 것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유하는 정신의 위력은 이를테면 원래 사유라는 자신의 고유한 형식(形式, Form) 속에서 자기 자신을 파악할뿐더러, 또 감정이나 감성으로 자신을 외화(外化,Entäußerung) 시키는 가운데서도 자기를 재인식하고, 자신의 타자(他者) 속에서(in seinem Anderen) 낯설어진 것(소외)을 사상으로 바꿔 자신에게 회귀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개념적으로 인식하는데 있다.
헤겔의 부정성(Negation) 부분에서 다시 고찰될 부분이지만 예술가(Künstler)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며 내적 감정의 동요(動搖)를 통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그래서 창작을 기반으로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추구하는 예술가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여 지지는 않지만 이미 자신의 부정성을 지속시켜 나아가려고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예술가 즉 창작자(Schöpfer)의 원동력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부정성이며, 이 부정성은 자신의 외화방식(Darstellendes Mittel) 즉 작품(Gestaltendes Mittel od. -e Werke)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과정을 거친다.
한편으로 예술가는 본능적으로 관객에게 자신의 즉자를 확인 받고자 하는 인정투쟁(Der Kampf um Anerkennung)의 욕망을 지닌다. 그러나 단순히 자아에 대한 사회적 평가의 욕망 즉 사회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욕망에 얽매인 예술가는 더 이상 자신의 즉자를 확인하지 못한다. 이러한 자아를 상실한 채 욕망에만 집착하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예술가가 남의 평가에만 의존할 경우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렇기에 예술가는 스스로 욕망의 사슬을 벗어나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려는 몸부림을 매번 경험해야 한다.
이것은 헤겔이 말한 그 자신이 절대적인 분열 속에 몸담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가운데 진리를 획득하는 것이다라는 말 속에 숨겨진 정신의 분열 또는 찢어짐 통해서 나타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순수한 창작품으로서의 자아를 찾아가는 이 몸부림 속에서 예술가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평가자로서의 관객의 위치로 자리로 전환되기도 하며, 이 가운데 관객은 예술가의 공연을 관람(觀覽)하고 있지만 예술가라는 존재를 통해서 정신의 자기운동 과정에 자연스럽게 들어선 것을 인식하게 된다. 이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관객과 예술가는 서로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불가분의 존재로 자연스럽게 남겨진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서로를 매개하는 가운데 존재하게 하는 부정성의 개념이 자리를 잡는다. 이처럼 카바레트 공연에서 나타나는 긍정적 부정성은 통해서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자신의 외화(Entäußerung)를 위한 소외(Entfremdung)에 직면하게 되는 시발점의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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